급강하- 급상승- 공포의 G포스… 완전히 새 됐다
[허정현 기자의 해봤더니…] 경량항공기



"이륙하겠습니다." 비행 학교 에어로마스터 박문주 대표가 손바닥 길이만큼 길쭉하게 빼 놓았던 스로틀 레버를 밀어 넣었다.

분당 엔진회전수(RPM)가 단박에 1,000 부근에서 2,800으로 치솟았다. 엔진이 토해 내는 굉음과 함께 기체가 땅을 박차듯 앞으로 돌진하자 몸이 의자에 파묻혔다.

활주로 끝까지는 350m. 좀 짧지 않을까 하는 생각은 기우였다. 활주로 3분의 1 지점에도 못 미쳐 기체가 솟구쳤다.

비상(飛上).

앞을 보면 하늘이 다가왔고 오른쪽 창으로 눈을 돌리면 땅이 멀어지고 있었다. 손바닥만한 여객기 창문으로 보던 이륙 장면이 5인치 액정 화면으로 보는 영화라면 경량 항공기 조종석에서 보는 건 아이맥스 영화에 견줄 만했다. 손을 대면 '쨍'하며 소리를 낼 듯 차가운 겨울 공기에 뼛속까지 시원했다.

기자는 16일 최대 이륙 중량 600㎏, 2인승 이하로 하늘을 노니는 경량 항공기 체험을 위해 경기 화성시 송산면 삼존리 에어로마스터를 찾았다.

에어로마스터 보유 20여 대의 항공기 중 기자를 하늘로 안내할 기종은 2005년 제작된 빙고503(이탈리아산). 길이 6m, 폭 9m 크기로 80l 연료 탱크를 가득 채우면 화성비행장에서 이륙, 3시간여 만에 제주까지 날아갈 수 있다. 최고 속도는 시속 160㎞.

이륙 직후 고도 50m쯤에서 돌풍을 만나 기체가 요동을 쳤다. 순식간에 10여 m나 떨어졌다. 수첩을 들고 있는 기자의 손이 위로 들렸다. 기자는 '으음'하고 신음을 뱉었다.

어깨를 나란히 하고 옆에 앉은 비행 6,500시간의 베테랑 조종사는 그저 지나가는 산들바람을 맞은 듯 아무 말도 없이 조종간을 당겼다. 표정의 변화도 없었다. 머쓱했다.

고도 180m에 다다르자 비행기는 날갯짓 한 번에 1만리를 난다는 대붕(大鵬)인 양 유유히 하늘을 갈랐다. 기수를 북서쪽으로 잡고 시속 130㎞로 순항했다. 불과 수분 만에 여의도 면적의 6배가 넘는 시화호(56㎢)가 시야에 들어왔다.

시화방조제로 바닷물이 막히기 전까지는 섬이었던 우음도가 동네 뒷동산처럼 뭍에 박힌 채 기자를 맞았다. 시화호 너머 길이 11㎞의 시화방조제, 시화공단, 안산 시가지 풍경이 왼쪽부터 파노라마처럼 펼쳐졌다.

헤드셋으로 박 대표의 말이 들려왔다. "여기까지 왔으니 철새 구경 좀 하시죠." 말이 끝나기 무섭게 기체가 하강했다. 몸이 들릴 정도의 급격한 하강. 고도계는 30m에 멈췄다.

한숨 돌릴 틈도 없이 오른쪽 창문으로 아래를 보란다. 철새 수백 마리가 도망을 친다. 물에 떠 있을 때는 새인지도 몰랐던 검은 점들이 일제히 하늘로 떠올랐다. 철새들의 군무(群舞)가 발 아래 검은 구름처럼 지나갔다.

기수를 다시 남쪽으로 틀었다. 고도 250m. 저 멀리 서해가 겨울 햇살에 금빛을 발했다. 넋을 잃고 바다 구경에 빠진 기자에게 박 대표가 선뜻 조종간을 내줬다.

조종석과 보조석 사이에 비죽 올라온 조종간은 끄트머리가 와이(Y) 자 모양이어서 조종사는 오른손으로, 보조석에 앉은 동승자는 왼손으로 쥘 수 있다.

이게 웬 떡이냐 싶어 조종간을 얼른 잡았다. 헤드셋으로 들리는 박 대표의 지시에 따라 조종간을 왼쪽으로 밀자 기체가 곧바로 기울었다. 조종간 끝을 새끼손가락 길이만큼 살짝 움직였을 뿐인데 기수가 30도 이상 틀어졌다.

재빨리 중립으로 되돌린다는 게 또 너무 빨랐다. 약간의 진동이 뒤따랐다. 서서히 몸으로 느끼면서 조종을 해야 한다는 조언이 귓전을 때렸다.

겉으로 보기에는 모든 게 정상이었다. '처음인데 제법 잘 하지 않느냐'는 눈빛으로 박 대표를 바라봤다. 그는 아무 말 없이 상승하강계기판을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기체가 5도 가량 들린 채 상승하고 있었다.

지면에 가까이 가면 위험하다는 원초적 본능 때문인지 지평선과 수평을 맞춘다고 해도 자꾸 머리가 들렸다. 자동차 운전대가 좌우 방향을 바꾸는 2차원이라면 비행기 조종간은 좌우에 상하가 더해져 조종하기 여간 까다로운 게 아니었다. 조종권을 넘겼다. 사뿐히 활주로에 기체를 내려놓는 박 대표가 위대해 보였다.

5분여의 휴식 후 한층 거친 공중기동에 도전했다. 좀 전에 탔던 기종보다 엔진 성능이 우수하고 기체도 탄탄해 곡예비행도 가능한 기종으로 갈아탔다.

급선회 급강하 급상승 연속 동작을 보여 주겠다는 박 대표의 말에 기체에 오르기 전부터 마음이 설?다. 이륙 후 고도 300m까지 곧바로 상승. 박 대표가 조종간을 오른쪽으로 꺾었다. 아마 조종간은 이때 마지막으로 본 듯싶다.

오른쪽 창으로 시화호 인근 갯벌이 보이는 듯 하더니 고도가 떨어지면서 무중력 상태처럼 엉덩이가 가벼워졌다. 기체가 자세를 가다듬자 순식간에 G포스(조종사가 느끼는 중력가속도의 힘)가 몰려왔다.

몸을 뒤틀기 어려울 정도의 G포스가 지나가자 다시 급상승. 이제는 등이 좌석에 붙어버렸다. 계기판을 볼 엄두도 내지 못해 박 대표에게 얼마나 올라왔는지를 물었다. 2, 3초 동안 50m를 상승했을 뿐인데 정신이 없었다. 다시 착륙. 두 발을 땅에 붙이고 서 있다는 것조차 행복했다.

서울로 돌아오는 길. 시원하게 뻗은 서해안고속도로를 질주하면서 잠시 비행의 기억이 오버랩 됐다. 기자가 탄 차가 성능 좋은 스포츠카라고 해도 어차피 정해진 도로를 달릴 수밖에 없는 법. 일순 도로가 답답해졌다. 불과 1시간 전 떠나온 활주로와 경량항공기의 엔진음, 그리고 하늘이 그리워졌다.

위험하지 않으냐고요? 엔진 꺼져도 사뿐히 착륙



경량 항공기에 대한 오해 두 가지. 위험하다, 비싸다. 경량 항공기를 탄다고 하면 '목숨은 하난데 어찌 그리 무모한 짓을 하느냐'며 핏대를 올리는 사람들이 있다.

사실 생각보다 안전한데도 말이다. 경량 항공기는 엔진이 꺼지더라도 고도의 열 배를 날 수 있어 제대로 교육을 받았다면 사뿐히 땅에 내려앉을 수 있다.

비행기라는 데 덜컥 겁을 집어먹은 탓인지 대당 수억 원을 호가하는 것으로 알고 있는 사람도 많다. 물론 싼 가격은 아니지만 3,000만원 정도면 장만할 수 있다. 웬만한 중형차 한 대 값이다.

최근 경량 항공기를 구입한 정낙훈(39)씨는 "다소 비싸기는 하지만 '자가용 차 있다'와 '자가용 비행기 있다'는 차원이 다르지 않느냐"고 말했다. 물론 사지 않고도 연료비를 포함해 시간당 15만원 정도면 교육 기관에서 빌릴 수 있다. 교관과 동승하는 체험 비행은 30분 기준 10만원 선이다.

경량 항공기를 조종하려면 반드시 국토해양부가 인증하는 공인 자격증이 있어야 한다. 단독 비행 5시간을 포함, 총 20시간 이상 비행 경력이 있어야 시험을 볼 수 있다.

시험은 이론과 실기로 나눠 교통안전공단에서 실시한다. 17세 이상이면 응시가 가능하며, 현재 국내 자격증 취득자는 1,300여명이다.

항공기 사고는 사망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매우 커 전문 기관에서 교육을 받는 건 필수다. 대한스포츠항공협회 홈페이지(www.kulaa.or.kr)에서 경기 화성시 에어로마스터(www.aeromaster.co.kr), 안산시 다이나믹항공(www.초경량항공기.kr), 충북 제천시 드림항공(www.flydream.co.kr) 등 전국 26개 교육 기관을 안내하고 있다.

양회곤 협회 사무처장은 "이들 교육 기관은 안전성 검사를 받은 항공기로 교육을 하고 있고 전문 교관이 상주하고 있어 믿고 교육받을 수 있다"고 설명했다.

교육 비용은 400만원선. 20시간 실기에 이론 교육이 포함된 가격이다. 통상 직장인의 경우 토요일과 일요일 각각 1시간씩 교육을 받을 경우 세 달 정도면 자격증을 취득할 수 있다. 평일 시간을 낼 수 있으면 한 달 만에도 가능하다.

합격자 300여명을 배출한 에어로마스터의 박문주 대표는 "기상 급변, 엔진 꺼짐 등 모든 상황에 대한 모의 훈련을 하기 때문에 교육을 수료한 사람이라면 안전에 대해서는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고 자신했다.





날고 싶다.

날고 싶다..

날고 싶다...


Posted by +깡통+